성종3 한명회 압구정 : 조선 최고 권력자가 한강변에 세운 정자로 현재 강남구 압구정동의 지명 유래가 된 역사적 장소 조선 최고의 권력자, 한명회와 압구정압구정은 조선 전기 최고의 권력자였던 한명회가 1476년(성종 7년) 한강변에 지은 정자로,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장소입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는 계유정난을 설계한 인물로, 세조부터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조선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던 문신이자 정치가입니다.한명회의 출생과 성장 배경한명회(韓明澮, 1415~1487)는 본관이 청주이고,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시호는 충성(忠成)입니다. 그는 1415년 10월 25일(음력)에 태어나 73세까지 장수하며 조선 전기 정치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한명회는 7개월 만에 태어난 칠삭둥이로, 태어났을 때 배.. 2025. 10. 25. 인수대비 한명회 :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와 권신 한명회의 정치적 사돈 관계 조선시대 권력의 중심에는 때로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복잡한 인간관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세조부터 성종에 이르는 시기, 조선 왕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관계 중 하나는 바로 인수대비와 한명회의 사돈 관계입니다. 이 두 인물은 각자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으며, 그 결과 성종이라는 왕을 탄생시켰습니다.인수대비와 한명회의 배경인수대비 한씨(1437~1504)는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의 아내로, 본래 왕비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 의경세자가 1457년 만 18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그녀의 왕비로 가는 길은 좌절되었습니다. 당시 21세였던 인수대비는 궁에서 나가 사가에서 세 자녀를 키우며 지내야 했습니다. 첫째 아들 월산대군, 딸 명숙공주, 그리고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훗날 .. 2025. 10. 24. 무오사화 : 조선 전기의 정치적 숙청 사건 조선 성종 20년(1489)에 발발한 무오사화(戊午士禍)와, 이어서 중종 원년(1506)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는 조선 전기 사림파(士林派)와 훈구파(勳舊派) 간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폭발한 대표적 역사적 사건이다. 이 두 사화는 조선 정치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이후 사림파의 성장과 붕당 정치의 토대를 마련했다.무오사화의 배경과 발단무오사화는 성종 말기 사림파 유생들이 성현(成俔)·김종직(金宗直) 등의 문집에서 훈구파 대신(臣代)들의 부패와 횡포를 비판하는 ‘조의제문(弔義祭文)’을 상소로 올리면서 시작되었다.당시 훈구파 대신들은 조카와 측근을 중용하면서 권력을 세습하였고, 토지와 노비를 팽창시켜 막대한 사유재산을 축적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사림파 유생 김일손(金馹孫) 등은 김종직의 문.. 2025. 10. 2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