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림파2

무오사화 : 조선 전기의 정치적 숙청 사건 조선 성종 20년(1489)에 발발한 무오사화(戊午士禍)와, 이어서 중종 원년(1506)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는 조선 전기 사림파(士林派)와 훈구파(勳舊派) 간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폭발한 대표적 역사적 사건이다. 이 두 사화는 조선 정치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이후 사림파의 성장과 붕당 정치의 토대를 마련했다.무오사화의 배경과 발단무오사화는 성종 말기 사림파 유생들이 성현(成俔)·김종직(金宗直) 등의 문집에서 훈구파 대신(臣代)들의 부패와 횡포를 비판하는 ‘조의제문(弔義祭文)’을 상소로 올리면서 시작되었다.당시 훈구파 대신들은 조카와 측근을 중용하면서 권력을 세습하였고, 토지와 노비를 팽창시켜 막대한 사유재산을 축적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사림파 유생 김일손(金馹孫) 등은 김종직의 문.. 2025. 10. 23.
현량과 :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로 선발한 조선시대 특별 과거 현량과는 조선시대 중종 때 단 한 차례 시행된 특별한 관리 선발 제도입니다. 1519년(중종 14년)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파의 건의로 실시된 이 제도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를 통해 선발하고 대책으로 시험하여 관직에 등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존의 과거제도가 사장(詞章) 위주로 진정한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는 비판에서 출발하여, 경학과 덕행을 중시하는 새로운 인재 등용 방식으로 제안되었습니다. 현량과라는 명칭은 중국 한나라 때 추천을 통한 인재 선발 방식인 현량방정과에서 유래한 것으로, 천거과 또는 기묘천과라고도 불렸습니다.현량과의 역사적 배경과 제안 과정중종은 중종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지만 반정공신들의 세력이 강하여 왕권이 약한 상황이었습니다. 연산군 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유교적 정.. 2025.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