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2 무오사화 : 조선 전기의 정치적 숙청 사건 조선 성종 20년(1489)에 발발한 무오사화(戊午士禍)와, 이어서 중종 원년(1506)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는 조선 전기 사림파(士林派)와 훈구파(勳舊派) 간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폭발한 대표적 역사적 사건이다. 이 두 사화는 조선 정치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이후 사림파의 성장과 붕당 정치의 토대를 마련했다.무오사화의 배경과 발단무오사화는 성종 말기 사림파 유생들이 성현(成俔)·김종직(金宗直) 등의 문집에서 훈구파 대신(臣代)들의 부패와 횡포를 비판하는 ‘조의제문(弔義祭文)’을 상소로 올리면서 시작되었다.당시 훈구파 대신들은 조카와 측근을 중용하면서 권력을 세습하였고, 토지와 노비를 팽창시켜 막대한 사유재산을 축적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사림파 유생 김일손(金馹孫) 등은 김종직의 문.. 2025. 10. 23. 정희량 : 무오사화의 피해자로 신선로를 창안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방외인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정희량(鄭希良, 1469년~?)은 본관이 해주이며, 자는 순부(淳夫), 호는 허암(虛庵)입니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한 뛰어난 유학자이자, 무오사화의 피해를 받고 은둔 생활을 하다 신비롭게 사라진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총명하고 박학다식하며 문예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음양학에도 밝았던 학자였으며, 현재 우리가 즐기는 전통 궁중 요리인 신선로를 창안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가문 배경과 성장정희량은 1469년(예종 1년)에 태어났으며, 명문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증조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정충석이었고, 할아버지는 호조참의 정침(1424~1485)이었으며, 아버지는 철원부사 정연경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청주 경씨로 경간의 딸이었으며, 그는 좌찬성 대제학.. 2025. 10. 1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