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데이비드(JD) 밴스는 현재 미국 제50대 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는 정치인이자 저자, 벤처캐피털리스트입니다. 1984년 8월 2일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제임스 도널드 보우먼으로 태어난 그는 파란만장한 성장과정을 거쳐 예일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베스트셀러 회고록 '힐빌리 엘레지'를 출간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초기 생애와 가족 배경
JD 밴스의 삶은 미국 애팔래치아 지역의 전형적인 백인 노동계급 가정의 복잡한 상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외조부모인 제임스 밴스(파파우)와 보니 밴스(마마우)는 1940년대 후반 켄터키주 잭슨에서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으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파파우는 16세, 마마우는 13세였으며, 마마우는 임신한 상태로 미혼이었습니다. 이들은 애팔래치아 지역의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북쪽으로 이주한 것이었습니다.
밴스의 친부모인 도널드 보우먼과 베브 밴스는 그가 유아기일 때 이혼했습니다. 어머니 베브는 그 후 밥 해멀과 재혼했고, 밴스는 양아버지의 성을 따라 제임스 데이비드 해멀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베브와 밥도 결국 이혼했고, 베브는 마약 중독과 여러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가정환경에서 밴스를 실제로 키워낸 것은 외조부모였습니다. 특히 마마우는 밴스에게 "내 인생에서 일어난 최고의 일"이라고 회고할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마마우는 강한 성격의 여성으로, 한때 파파우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려고 했을 정도로 격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밴스에게 사랑과 안정감을 제공했으며, 그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엄격하면서도 애정 어린 지도를 했습니다.
마마우와 파파우는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자였습니다. 그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지지하는 노조 민주당원이었으며, 1984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투표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민주당을 지지했습니다. 마마우는 특히 빌 클린턴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은 현재 공화당 부통령인 밴스의 정치적 성향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육과 군 복무
밴스는 2003년 미들타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군대에 간 이유에 대해 "성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수표장 정리 방법도 모르고 대학 재정보조 신청서 작성법도 몰랐다고 회고했습니다.
해병대에서 밴스는 군사 기자(컴뱃 코레스폰던트) 역할을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 2007년까지 4년간 복무했습니다. 2005년 후반부터 약 6개월간 이라크에 파견되어 군사 기자로서 활동했습니다. 복무 중 해병대 선행장과 해군 및 해병대 공로장을 받았습니다.
군복무를 마친 후 밴스는 GI 빌을 활용해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2009년 정치학과 철학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대학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그는 예일대학교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고, 첫 해에는 거의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예일 법대 시절 밴스는 문화적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상류층 동부 지역 법대에서 힐빌리 출신인 자신이 겪어야 하는 문화적 장벽들을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취업 면접에서 샤르도네와 소비뇽 블랑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묻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 두 와인을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어 당황했던 경험을 회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일 로 저널의 편집자로 활동하며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힐빌리 엘레지'와 전국적 명성
예일 법대에서 밴스는 에이미 추아 교수의 격려를 받아 자신의 성장 과정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출간된 '힐빌리 엘레지: 가족과 문화의 위기에 관한 회고록'은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트럼프의 승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6권의 책 중 하나"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책에서 밴스는 애팔래치아와 러스트 벨트 지역 백인 노동계급의 몰락과 그 원인을 개인적 경험과 사회 분석을 통해 다루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힐빌리 문화가 어떻게 사회 해체와 경제적 불안정을 조장하는지 분석했습니다. 특히 복지 수급자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개인의 책임감 부족이 빈곤의 악순환을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책은 3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2020년에는 론 하워드 감독, 글렌 클로즈와 에이미 아담스 주연으로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밴스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적어도 18개 대학에서 졸업식 연설이나 강연을 하며 7만 달러 이상의 강연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 경력
법대 졸업 후 밴스는 다양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먼저 연방 판사 데이비드 버닝의 법무관으로 일했으며, 시들리 오스틴 법률회사에서 기업 변호사로도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법조계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2016년 밴스는 피터 틸이 공동 창립한 미스릴 캐피탈에서 벤처 캐피털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힐빌리 엘레지'가 전국적 화제가 되던 때였습니다. 그 후 스티브 케이스의 레볼루션 회사에서 '라이즈 오브 더 레스트 시드 펀드'의 매니징 파트너로 일하며, 실리콘밸리 외 지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2019년 밴스는 콜린 그린스폰과 함께 신시내티에 본사를 둔 나르야 캐피털을 공동 창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9,300만 달러를 조달했으며, 피터 틸, 마크 안드레센, 에릭 슈미트, 스콧 도시 등 유명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나르야 캐피털은 솔트레이크시티, 애틀랜타, 롤리-더럼 등 실리콘밸리가 아닌 지역의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했습니다.
밴스의 벤처 캐피털 경력은 약 6년간 지속되었으며, 정치적 야심이 커지면서 2022년 상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나르야 캐피털의 파트너 역할에서 물러났습니다. 현재도 그는 나르야 캐피털 펀드 I, 나르야 캐피털 펀드 II, 라이즈 오브 더 레스트 시드 펀드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나르야 캐피털 펀드 I에서의 지분은 50만 1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 전환
밴스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는 2019년 가톨릭으로의 개종이었습니다. 그는 장로교 문화권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 세례를 받지 않았고, 마마우는 "조직화된 종교"를 불신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 밴스는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에게 기독교 신앙을 강하게 지적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습니다. 기독교도가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거짓말을 오랫동안 믿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감동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라고 그는 회고했습니다.
2019년 8월 밴스는 신시내티의 성 거트루드 수도원에서 도미니크회 소속 헨리 스테판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개종 이유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서 가톨릭이 진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현대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가톨릭의 규칙과 수세기에 걸친 안정성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가톨릭 개종은 밴스의 정치적 세계관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2020년 에세이에서 "나는 우리의 나쁜 행동을 동시에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것, 구조적이고 도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세계관이 절실히 필요했다"고 썼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그의 공공정책에 대한 견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그는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정치적 변화와 트럼프와의 관계
밴스의 정치적 여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그의 입장 변화입니다. 2016년 대선 당시 밴스는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네버 트럼프 가이"라고 부르며, 트럼프를 "바보"라고 칭했고, 심지어는 "미국의 히틀러"라고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NPR과의 2016년 인터뷰에서 밴스는 "트럼프를 지지할 수 없다"며 "그는 혐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는 "트럼프는 우리나라 최고위직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했으며, 2016년 선거에서는 제3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2021년 상원 출마를 결정하면서 밴스의 입장은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트럼프를 비판했던 기존 트위터 게시물들을 삭제하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발언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나는 그런 비판적인 말을 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왔으며 그것을 후회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밴스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트럼프의 스타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가 외교정책, 무역, 이민에서 제시하던 실질적인 차이점들을 놓쳤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유무역이 중서부 미국을 황폐화시켰다는 트럼프의 주장과 정치 지도자들이 해외 분쟁에 너무 성급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에 점차 동의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상원 의원 경력
2022년 오하이오주 상원 선거에서 밴스는 은퇴하는 공화당 롭 포트먼 의원의 자리를 놓고 민주당 하원의원 팀 라이언과 경쟁했습니다. 이는 치열한 선거였으며, 라이언은 예상보다 강력한 도전을 펼쳤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의 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밴스를 지지했고, 본선에서도 두 차례 유세를 도왔으며, 선거 전날에도 밴스를 위해 집회를 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밴스는 6.1퍼센트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이는 같은 날 실시된 다른 오하이오주 공화당 후보들의 승리 폭보다는 작았지만, 여론조사 예측과는 일치하는 결과였습니다.
2023년 1월 3일 상원 의원으로 취임한 밴스는 1974년 우주비행사 존 글렌 이후 정치 경험 없이 오하이오 상원 의원이 된 첫 번째 인물이었습니다. 상원에서 그는 포퓰리즘적 목소리를 내며 때로는 공화당 지도부와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상원 재임 기간 동안 밴스는 45차례 본회의에서 발언했고 57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비록 그가 발의한 법안 중 상원을 통과한 것은 없지만, 초당적 협력도 보여주었습니다. 민주당의 셰로드 브라운 의원과 함께 오하이오주 이스트 팔레스타인 열차 탈선 사고 후 철도 안전 기준 개선 법안을 발의했고,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과는 은행 규제 관련 법안에서 협력했습니다.
밴스는 상원에서 은행·주택·도시업무위원회, 상업·과학·교통위원회, 고령화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2025년 1월 10일 부통령 취임을 앞두고 상원직에서 사임했습니다.
부통령 선출과 가족
2024년 7월 트럼프는 밴스를 로 선택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노스다코타주 주지사 더그 버검 등을 제치고 선택된 것이었습니다. 2024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밴스 티켓이 승리하면서 밴스는 2025년 1월 20일 미국 제50대 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40세(취임 시 39세)의 밴스는 역사상 세 번째로 젊은 부통령이 되었으며, 밀레니얼 세대 출신으로는 최초입니다. 또한 연속되지 않은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는 대통령 하에서 일하는 두 번째 부통령이기도 합니다.
밴스는 예일 법대 동급생인 우샤 칠루쿠리와 2014년 6월 14일 켄터키에서 결혼했습니다. 우샤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인도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예일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학위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게이츠 장학금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예일 법대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우샤는 브렛 캐버노 판사(당시 연방항소법원 판사),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을 위해 법무관으로 일했으며, 머거 톨레스 앤 올슨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남편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후 2024년 7월 회사를 떠났습니다.
부부는 세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 이완(2017년 6월 출생, 현재 8세), 둘째 비벡(2020년 2월 출생, 현재 5세), 막내 미라벨(2021년 12월 출생, 현재 2세)입니다. 우샤는 힌두교도이자 평생 채식주의자이며, 밴스는 그녀의 채식 식단에 맞춰 인도 음식 요리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우샤 밴스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세컨드 레이디이자 최초의 힌두교도 세컨드 레이디가 되었습니다. 또한 39세로 트루먼 행정부 시절 38세였던 제인 하들리 바클리 이후 가장 젊은 세컨드 레이디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입장과 정책
밴스는 국가보수주의자이자 우파 포퓰리스트로 분류되며, 자신을 "포스트리버럴 우파"의 일원이라고 정의합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사회 이슈에서 밴스는 보수적 입장을 취합니다. 낙태 반대, 동성결혼 반대, 총기 규제 반대 정책을 지지합니다. 그는 또한 출산을 장려하는 여러 정책을 지지하며, 무자녀와 사이코패스 사이의 연관성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부모가 비부모보다 더 많은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2024년 8월 이 제안에서 후퇴했습니다.
외교정책에서 밴스는 고립주의적 성향을 보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반대하며,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한 평화를 선호합니다. 반면 가자 지구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합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일부 정책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경제 정책에서 밴스는 포퓰리스트적 접근을 취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고 산업 보조금이나 세금 공제를 통한 정부 개입을 지지합니다. 그는 "임금에 대한 상승 압력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서비스에 대한 하락 압력을 최대한 가하는 것"이 자신의 포퓰리스트 경제 비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며, 이 점에서 진보적 민주당원들과 일치하는 견해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민 정책에서는 엄격한 국경 정책과 대량 추방을 지지하며, 국경 장벽 건설 재개를 옹호합니다. 합법 이민에 대해서는 성과 중심 시스템을 지지합니다. 최근에는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이민자들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확산시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현재와 미래
2025년 1월 20일 부통령으로 취임한 밴스는 이제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공화당 전국위원회 재정위원장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4월에는 가족과 함께 인도를 방문하여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의 무역 회담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 방문에서 그의 자녀들이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문화 교류를 보여주어 주목받았습니다.
밴스의 부통령 역할은 딕 체니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부통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의 가톨릭 신앙과 포스트리버럴 우파 이념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JD 밴스의 인생은 애팔래치아의 가난한 힐빌리 소년에서 예일 법대 졸업생, 베스트셀러 작가, 벤처 캐피털리스트, 그리고 미국 부통령까지 이르는 놀라운 여정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미국의 사회적 이동성과 계급 문제, 그리고 정치적 변화의 복잡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가 부통령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그리고 미래 정치적 행보가 어떻게 될지는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