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을 사랑한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삶과 업적

by jisik1spoon 2024. 12. 29.

리차드 위트컴(Richard S. Whitcomb) 장군은 6·25전쟁 당시 부산의 재건과 전쟁 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미국의 군인입니다. 그의 인도적 활동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업적은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생애

리차드 위트컴은 1894년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났습니다. ROTC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며, 1953년 한국 전쟁 당시 부산 미2군수기지사령관으로 부임하며 처음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는 한국에서의 활동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부산 대화재와 위트컴 장군의 구호 활동

1953년 11월, 부산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여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위트컴 장군은 군수 물자를 개방하여 천막과 식량을 제공하며 이재민들을 도왔습니다. 이로 인해 미 의회 청문회에 소환되었으나, 그는 "전쟁은 총과 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답변하여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의료 시설 건립에의 기여

위트컴 장군은 당시 의료 시설의 부족을 느끼고, 메리놀병원을 비롯한 여러 의료 기관의 건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대한미군원조처(AFAK)의 기금을 조달하기 위해 애썼으며, 병원 건립을 위해 부대원들과 함께 월급의 1%를 헌금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의 헌신

위트컴 장군은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1954년 부산대학교 초대 총장인 윤인구 박사는 대학 건립을 위해 위트컴 장군을 초청하여 설계도를 보여주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장군은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한국 정부를 설득하여 장전동 부지 50만 평을 무상으로 제공받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대학 건설 비용 25만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또한, 건축 자재를 지원하고 공병 부대를 통해 진입로와 부지 조성 공사를 도왔습니다.

전쟁 고아들을 위한 헌신

위트컴 장군은 전쟁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짓고 후원하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는 퇴역 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부산의 재건과 복구에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부산 시민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공덕비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사랑과 마지막 안식처

위트컴 장군은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며, 현재 유엔기념공원에 장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의 묘비는 한국인들의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결론

리차드 위트컴 장군은 한국 전쟁 당시와 그 이후에도 한국의 재건과 복구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그의 인도적 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삶과 업적은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한국전쟁 참전국(6.25 참전국)과 그들의 기여

유엔군 공동묘지 유엔기념공원 : 세계 평화와 희생을 기리는 장소

아일라 영화: 전쟁 속에서 피어난 감동의 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