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영어: verbal inspiration)은 성경이 글자 하나하나까지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단 한 글자도 한 문장도 틀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성경관입니다. 축자(逐字)라는 한자어는 '글자를 쫓아 옮겨 적다'는 뜻으로, 성경 기록자들이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적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축자영감설의 기본 개념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원본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으며, 그 영감의 범위가 글자 하나하나의 선택에까지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이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성경의 모든 단어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여 알려주신 것이므로, 성경에는 어떠한 오류도 있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내용을 과학적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며, 문자적 해석을 최선의 해석 방법으로 간주합니다.
축자영감설의 지지자들은 성경 기록자들을 '저자'가 아닌 '기자'라고 부릅니다. 저자라는 표현에는 창작과 소유의 의미가 담겨 있는 반면, 기자라는 용어는 단순히 기록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성경의 진정한 저자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단지 그 말씀을 기록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나타냅니다.
축자영감설의 성경적 근거
축자영감설의 지지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은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는 이 구절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3장 16절, 베드로후서 1장 21절 등도 축자영감설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은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성경 기록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축자영감설의 역사적 배경
축자영감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제임스 바(James Barr)에 따르면 이 이론은 16세기와 17세기 개신교 신학자들 가운데서 시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정통 개신교 신학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극단적인 축자영감설을 거부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축자영감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세기 세대주의와 20세기 초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초 미국에서 발행된 《근본》(The Fundamentals)이라는 책자 시리즈에서 축자영감설이 적극적으로 옹호되면서, 기독교 근본주의의 핵심 교리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0세기 들어 진화론을 비롯한 새로운 과학 이론들이 등장하고 역사학이 발전하면서 성경의 일부 내용이 역사적, 과학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도전 속에서 성경의 권위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축자영감설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 신학과를 중심으로 축자영감설에 기반한 성서무오설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축자영감설의 분류
축자영감설은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축자영감된 비중에 따른 분류입니다. 완전축자영감설은 성경 전체가 100% 축자영감되었다고 믿는 입장입니다. 반면 부분축자영감설은 전체적인 맥락은 축자영감되었으나 일부 단어나 문화적인 부분은 축자영감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둘째, 축자영감의 방식에 따른 분류입니다. 받아쓰기 방식은 성령이 옆에서 불러주고 사람이 받아적었다는 것입니다. 기계적 영감설은 성령이 성경 기자의 팔을 붙잡고 그 팔을 움직여서 기록하였다는 극단적인 주장입니다. 성령감동축자영감설은 성령에 신들려서 성령이 지시하는 대로 썼다는 것으로, 개인의 의지나 사고방식이 100% 배제된 상태에서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유기적 축자영감설입니다. 이는 기자의 의지와 생각이 온전한 상태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쓰였다는 견해로, 성경이 100% 성령의 영감인 동시에 기자의 개인적인 특성도 모두 인정됩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의 경우 그의 지식과 경험이 성경에 모두 드러나는데, 이러한 개인적 특성 역시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축자영감설과 다른 영감설의 비교
축자영감설 외에도 여러 영감설이 있습니다.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 기록자의 정신 활동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에서 성령께서 불러주시는 것을 기계적으로 받아 썼다는 주장입니다. 이 견해는 성경 저자들을 인격이 없는 로봇으로 만든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후커(Hooker, 1554-1600)는 "성경 저자들은 자기 자신들의 말을 아무것도 말하거나 기록하지 않았고 성령이 그들의 입에 넣어주시는 대로 한 음절 한 음절 발음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동력적 영감설(역동적 영감설)은 성령이 저자를 감동시켜서 의도하는 목적을 정확하게 쓰도록 했다는 견해입니다. 이는 전적인 성령의 영감이 아니라 사상이나 인격에 영향을 준다고 보아 사상영감설, 인격영감설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견해는 성경의 특별영감을 부인하며 성경의 무오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유기적 영감설은 성령의 유기적인 영감에 의해 성경 기록자의 기질, 경험, 문체, 교육 정도 등이 손상 없이 그대로 사용되어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견해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자를 기계적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내적 존재와 잘 조화시켜서 유기적 방법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국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는 이 유기적 영감설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상영감설은 성경의 전체적인 사상은 영감되었지만, 그 사상을 표현하는 문자나 용어들은 성령의 지도나 감독 없이 저자 자신이 선택하여 사용했다는 견해입니다. 부분적 영감설은 성경의 어느 부분만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떤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의 관계
축자영감설은 성경무오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무오설은 성경이 오류가 없다는 주장으로, 축자영감설은 이러한 성경무오설의 근거가 됩니다. 성경의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면, 당연히 성경에는 어떠한 오류도 있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전통적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적 성경무오설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4세기부터 전해진 전통적 성경무오설은 성경이 구원의 절대적인 복음의 책이고 교회의 바탕이라는 의미로,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반면 축자영감설적 성경무오설은 성경의 모든 문자가 역사적, 과학적 사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 장로교단의 분열도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47년 조선신학교 김재준 교수의 '성경유오설'이 논란이 되면서, 예수교대한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분리되었습니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고신, 합신은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받아들이는 반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성경무오설은 인정하되 축자영감설은 거부합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 자체를 거부하고 성경비평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축자영감설의 문제점
축자영감설에 대한 여러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첫째, 성경 원본 문제입니다.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원본이 한 글자 한 글자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성경 원본은 한 권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모두 원본은 소실되었고, 우리는 사본들만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사본만 해도 약 5,000여 개에 이르며, 이 사본들 간에는 다양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둘째, 성경 기록자의 개성 문제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 권의 기록자에 따라 독특한 문체 및 개인적인 다양한 경험들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각각 다른 문체와 관점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한 글자 한 글자를 불러주셨다면, 이러한 개인적 특성이 나타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성경 내부의 모순과 차이 문제입니다. 성경을 면밀히 검토하면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기록이나 숫자의 차이가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마다 예수님의 족보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축자영감설이 맞다면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넷째, 문자적 해석의 문제입니다.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지만, 성경에는 비유, 상징, 시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히려 본래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성경비평학과의 충돌 문제입니다.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문헌양식, 전승자료, 편집양식, 사회학적 배경 등을 분석하는 성경비평학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에서는 성경비평학을 통해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축자영감설과 기독교 근본주의
축자영감설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난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의 핵심 교리 중 하나입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과 진화론 같은 현대 과학 이론에 대항하여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5대 주장은 성경의 무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육체의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이 중 성경의 무오는 축자영감설에 기반한 것으로, 성경의 모든 글자가 오류 없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축자영감설과 문자적 성경 이해를 통해 성경의 권위를 절대화했습니다. 이들은 본문의 시대적 배경, 기록자의 환경, 문맥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영적인 지시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주장에 필요한 성경 구절을 취사선택하여 재편집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정통 개신교회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축자영감설과 세대주의
세대주의는 19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신학적 흐름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는 데 현저하게 다른 세대들이 있다는 신념에 기반합니다. 세대주의는 축자영감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세대주의는 성경의 축자영감과 무오설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었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전체 성경 본문을 일관된 체계 하에 논리적으로 배열하려 했으며, 특히 성경의 예언에 대해 철저하게 문자적 해석을 했습니다.
세대주의는 미국의 신학교들이 자유주의화되어 갈 때, 성서학원을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달라스 신학교, 무디 성서학원 등에서 세대주의 교수들이 축자영감설을 가르쳤고, 이들 밑에서 훈련받은 목사들이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면서 축자영감설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선교 초기 대다수의 목회자와 부흥사들이 세대주의와 축자영감설을 받아들이고 이를 전했습니다. 미국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성경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는 축자영감설을 따르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과 축자영감설
현대 신학에서는 축자영감설을 학문적 가치가 있는 가설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보수적이거나 정통을 자처하는 신학자들에게도 극단적인 축자영감설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신학 교육을 받은 목사라면 완전축자영감설을 함부로 지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성경이 시대를 따라 수정 및 가필되어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신학대학에서 여러 번 강조하는 사항입니다. 개신교에서 성경의 독자적인 해석을 용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신자들은 축자영감설을 지지하며, 오히려 신학자나 신학과 교수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번 습득된 관점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축자영감설과 현대 신학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축자영감설
한국 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미국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미국 남침례교와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축자영감설이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언론기관들이 축자영감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보다 균형 잡힌 성경 이해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은 성경무오설은 인정하되 축자영감설은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성경비평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축자적 영감설을 비판하면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창조과학과 같이 성경을 과학적 사실로 증명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축자영감설의 의의와 한계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성경을 귀하게 여기는 신앙의 자세에서 나온 것으로, 그 자체로는 경건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존중하는 태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축자영감설을 극단적으로 적용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만을 고집하면 성경의 깊은 의미를 놓칠 수 있으며, 과학이나 역사학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해석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견해를 배척하는 태도는 교회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신학에서는 유기적 영감설과 같이 보다 균형 잡힌 관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믿되, 동시에 인간 기록자의 역할과 역사적 맥락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결론적으로 축자영감설은 기독교 신앙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적용에 있어서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되,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 문화적 맥락과 문학적 특성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태도가 요구됩니다. 이를 통해 성경의 진정한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