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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주의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by jisik1spoon 2025. 5. 27.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한국 근대사의 아이러니를 체화한 인물이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주의자이자 한국 최초의 근대 잡지 『소년』을 창간한 문화 개척자로서의 업적과, 일제강점기 후반 조선사편수회 참여 및 학병 권유 연설 등 친일 행적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규정된 그의 생애는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도덕적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기 생애와 문화 개척자로서의 면모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

1890년 한성부에서 중인 계층의 아들로 태어난 최남선은 1904년 대한제국 국비유학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했다. 1907년 학생모의국회 사건으로 퇴학당한 후 귀국해 1908년 11월 한국 최초의 근대적 잡지 『소년』을 창간했다. 이 잡지는 A5판 84면에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 신체시를 실으며 연간 2,500부까지 발행되며 계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10년 조선광문회를 설립해 『역사지리연구』 등 20여 종의 고전을 출판하며 민족문화 보존에 기여했고, 1914년 『청춘』지 발간으로 청년층 사상계를 주도했다.

문학적 혁신과 역사 연구

1926년 발표된 시조집 『백팔번뇌』는 근대 최초의 창작 시조집으로 평가받는다. "시조는 조선문학의 정화"라 선언하며 108수의 작품을 수록, 전통 양식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켰다. 1925년 『불함문화론』에서 단군신화를 역사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했으며, 1927년 『백두산근참기』를 통해 민족정신의 상징 공간을 탐사하는 국토 순례 문학을 정립했다. 그의 역사 연구는 1930년대 『조선상식문답』으로 체계화되며 대중적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독립운동가에서 협력자로의 전환

3·1운동과 투옥

1919년 3·1운동 당시 최남선은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전문(前文)과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라는 결문(結文)은 그의 문체적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사건으로 2년 6개월간 복역했으나, 1921년 10월 가출옥 형태로 석방되며 이후 행적에 논란이 시작되었다.

친일 행적의 다층적 양상

1928년 조선사편수회 편수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본격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일제의 역사왜곡 기관에서 활동하며 1935년 '일선문화동원론(日鮮文化同源論)'을 주장, 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1939년 만주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해 "오족협화(五族協和)" 이념을 전파했으며, 1943년 도쿄 제국대학 강당에서 조선인 유학생 대상 학병 지원 연설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월급은 1938년 기준 100원으로 당시 노동자 평균 임금(3-7원)의 14배가 넘는 특권적 대우를 받았다.

해방 이후의 논쟁과 역사적 평가

반민특위 재판과 최후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최남선은 자열서(自列書)에서 "조선사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다"고 주장했으나, 1950년 공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되었다. 1957년 사망할 때까지 『한국통사』 집필 등 학문 활동을 지속했으나,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최종 확정되며 공식적 평가가 내려졌다.

유산의 이중성

최남선의 문화적 공헌은 현대 한국문학의 기초를 닦은 점에서 인정받는다. 1908년 『소년』 창간은 한국 근대 출판사의 시초로 평가되며, 1926년 『백팔번뇌』는 시조 부흥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1935년 이후의 행적은 "학문적 타협"을 넘어 식민 권력과의 적극적 협력으로 해석되며, 이는 그의 초기 업적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결론: 미완의 역사 청산

최남선의 생애는 식민지 시대 지식인이 직면한 윤리적 선택의 난제를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민족문학의 기반을 구축한 선구자요, 다른 한편에서는 제국주의 논리에 포섭된 협력자라는 이중적 평가 사이에서 그의 역사적 위치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2024년 현재 진행 중인 『소년』 창간 116주년 기념 전시회와 친일행위 규명 운동의 병행은 이러한 복합적 유산을 반영한다. 그의 사례는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 식민지 근대성이 지닌 구조적 모순을 해석하는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