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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끈 기술 중시 경영인이자 효성그룹의 성장을 견인한 제2대 회장

by jisik1spoon 2025. 11. 24.

조석래(趙錫來, 1935년 11월 19일~2024년 3월 29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자 효성그룹의 제2대 회장으로, 기술 중심 경영철학과 글로벌 비전으로 한국 산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35년간 효성그룹을 이끌며 섬유, 첨단소재, 중공업, 화학 등 전 사업 부문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태평양경제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 경제외교의 선구자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산업보국(産業立國)'의 철학을 평생 실천하며 국가 경제 발전에 헌신한 기업가로 기억됩니다.

생애와 학력

출생과 성장 배경

조석래는 1935년 11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함안 조씨이며, 경상남도 함안의 대지주 집안 출신입니다. 그는 함안 군북국민학교에서 초등교육을 시작했으나 5학년 때 서울 재동국민학교로 전학했으며, 경기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해외 유학과 학문 탐구

조석래는 경기고 1학년을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55년 일본 히비야(日比谷)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와세다 대학교 이공학부(응용화학과)에 진학하여 1959년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대학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해 1966년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박사 학위 과정을 준비하며 대학 교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으나, 1966년 아버지 조홍제 창업주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여 기업 경영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명예 학위 수여

조석래는 기술 경영인으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두 차례 해외 명문 대학에서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모교인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에는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인에게는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과 달리, 그에게는 기술 개발과 글로벌 기업 육성의 공로를 인정하여 명예 '공학'박사 학위가 수여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경영 활동과 주요 경력

효성 입사와 초기 경력

조석래는 1966년 귀국 직후 효성물산 관리부장으로 입사하여 기업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동양나이론 건설본부장직을 맡아 울산공장 건설을 직접 지휘하며 효성그룹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70년부터 1985년까지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에는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습니다. 1975년에는 한영공업(후에 효성중공업)을 인수하여 효성중공업으로 개편하며 중전기기와 산업기계의 국산화를 주도했습니다.

효성그룹 제2대 회장 취임

조석래는 1982년 3월 효성그룹 제2대 회장에 취임하여 2017년까지 35년간 그룹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창업주인 아버지 조홍제 회장이 작고하기 2년 전인 1982년 회장직을 승계받아, '산업입국(産業立國)'이라는 창업 철학을 계승하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2017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되었으며, 2024년 3월 29일 향년 89세로 별세했습니다.

대외 활동 및 경제 단체 리더십

조석래는 그룹 경영뿐만 아니라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여러 경제 단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1987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한 후, 2007년 3월 제31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2011년 2월까지 재임했습니다. 또한 2002년 5월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국제회장에 선임되어 2004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협력을 이끌었으며,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 체결에 기여했습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는 한일경제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한일 경제 협력 증진에 힘썼습니다.

기술 중시 경영철학

민간기업 최초 기술연구소 설립

조석래 회장은 재계에서 '기술 중시' 경영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인 그는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철학을 강조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2006년 효성기술원으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신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산업입국 철학의 실천

조석래는 부친인 조홍제 창업주 때부터 강조되어 온 '산업입국(産業立國)'의 경영철학을 충실히 계승했습니다. 산업입국이란 산업을 일으켜 국민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의미로, 조 회장은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산업보국 정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1988년 신입사원 연수 특강에서 "산업활동을 하며 국가에 봉사한다는 투철한 정신이 효성 성장의 바탕"이라고 강조했으며, 임종을 앞두고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업을 번창시켜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독자 기술 개발과 세계 1위 제품 육성

조석래 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은 효성그룹의 대표 제품들을 세계 1위로 육성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섬유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스판덱스는 조 회장이 축적기술이 없던 상태에서 독자 개발을 직접 지시한 제품입니다. 효성은 1989년 연구개발에 착수하여 1990년대 초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보유하고 있던 스판덱스 제조기술을 독자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2010년에는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해 현재까지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타이어코드 역시 조 회장의 기술 경영이 빛을 발한 분야입니다. 효성은 1968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 타이어코드를, 1978년에는 독자기술로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를 생산했으며, 현재 세계 시장점유율 45%를 차지하는 글로벌 1위 제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2011년에는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탄소섬유를 독자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위기 극복과 구조조정

IMF 외환위기 극복

조석래 회장의 경영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한 시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입니다. 당시 효성물산은 무리한 수출로 1조 원대의 적자를 내며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조 회장은 ▲파산 ▲공적자금 수혈 ▲벌어서 갚기 중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고,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정부와 주거래은행에 이행각서를 제출했으며, 1998년 여름 효성물산,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T&C 등 주력 4개사를 ㈜효성으로 전격 통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수를 20개에서 11개로 줄이고, 2년 동안 부동산 등을 매각해 6000억 원을 마련하여 빚을 갚았습니다. 그 결과 영업이익은 10.2% 증가했고, 부채비율도 1997년 465%에서 2000년 174%로 개선되었습니다. 효성은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자구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았으며, 학계에서도 성공적인 경영혁신 사례로 소개되었습니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혁신

조석래 회장은 1997년 12월 효성그룹의 전 조직을 퍼포먼스 유니트(Performance Unit) 체제로 개편하고 PU별 책임 경영체제를 구축했습니다. 1998년 11월에는 주력 4사를 합병하고 비핵심 계열사 및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 혁신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이러한 선제적이고 강력한 구조조정은 IMF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효성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글로벌 경영과 민간 경제외교

글로벌 시장 진출과 네트워크 구축

조석래 회장은 1990년대부터 중국의 성장세를 주목하고 '글로벌 시장에 대한 수출 확대만이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으로 효성을 경쟁사들보다 한발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켰습니다.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전력기기 등 주력사업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베트남, 인도, 터키, 브라질 등에 현지 생산공장을 건설하여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현재 효성은 매출의 약 80%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이는 수출지향적 기업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전 세계 50여 개 제조·판매법인과 30여 개의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 체결과 비자면제 기여

조석래는 민간 경제외교관으로서도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2000년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은 직후부터 "우리 경제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무역자유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국내 기업인 중 처음으로 한미 FTA를 제안했습니다. 조 회장은 한미 FTA 협상 전 과정에 걸쳐 양국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며 '가장 열정적인 기여자'로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을 위해 미 국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고 비자분과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비자외교를 펼쳐, 2008년 한국이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대상국이 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한일 경제 협력 증진

조석래 회장은 한일 경제 협력 분야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한일재계회의, 한일경제인회의, 한일포럼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며, 2005년 2월부터 한일경제협회 회장과 한일산업기술재단 이사장을 맡아 양국 간 경제 협력과 교류 활동 강화에 힘썼습니다. 정치적 문제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경제 분야의 기술교류가 지속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일본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을 받았습니다.

수상 경력과 주요 업적

조석래 회장은 평생에 걸친 경영 활동과 경제 발전 기여를 인정받아 다수의 상훈을 받았습니다. 1971년 수출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습니다. 1994년에는 한국경영자 대상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일리노이 공과대학(IIT) 국제지도자상을 받았습니다. 2009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대수장을 수훈했으며, 2021년에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국제포럼의 제14회 영산외교인상을 수상했습니다. 2025년에는 한일 경제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한일포럼상을 수상했습니다.

가족과 후계 구도

가족 관계

조석래는 송인상 전 재무부 장관의 삼녀인 송광자 여사와 결혼하여 3남을 두었습니다. 장남 조현준은 현재 효성그룹 회장이며, 차남 조현문은 전 효성 부사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삼남 조현상은 효성 부회장으로 HS효성을 이끌고 있습니다. 조석래의 동생 조양래는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을, 조욱래는 조광그룹 회장을 각각 역임했습니다.

경영권 승계와 유언

조석래 명예회장은 2024년 3월 별세하기 전 유언장을 작성하여 '형제 간 우애'를 강조하고, 집안과 의절한 차남 조현문에게도 상속재산을 나눠주도록 당부했습니다. 그는 유언장에서 "부모·형제 인연은 천륜"임을 강조하며 형제간 화해를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2024년 5월 상속이 완료되어 장남 조현준과 삼남 조현상이 각각 독립 경영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 7월 1일 효성그룹은 ㈜효성과 HS효성 두 지주회사 체제로 분할되었습니다.

경영철학과 어록

조석래 회장은 다양한 경영 어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현재의 고통은 몸에 쓴 약"이라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글로벌 현장에 직접 나가 시장의 현황과 고객의 니즈를 철저히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임원들에게 주문했습니다. 또한 "기술이 경쟁력"이라는 신념으로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강조했으며, "산업활동은 국가에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해야 한다"며 산업보국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을 담은 자서전적 경영어록이 1999년 출판되어 효성 임직원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주요 경력 및 활동 연표

연도 주요 경력 및 활동
1935년 11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출생
1955년 일본 히비야 고등학교 졸업
1959년 와세다 대학교 이공학부 졸업
1966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화학공학 석사 취득, 효성물산 입사
1970년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사장 취임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 기술연구소 설립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설립
1975년 효성중공업 설립 주도
1982년 효성그룹 제2대 회장 취임
1987년 금탑산업훈장 수훈,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취임
1998년 주력 4개사 합병 구조조정 단행
2000년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취임
2002년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국제회장 선임
2005년 한일경제협회 회장 취임, 와세다대 명예 공학박사 취득
2007년 제31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선임
2009년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대수장 수훈
2013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명예 공학박사 취득
2017년 효성그룹 명예회장으로 물러남
2021년 제14회 영산외교인상 수상
2024년 3월 29일 별세 (향년 89세)

평가와 유산

조석래 회장은 '재계의 큰 별', '기술 경영의 선구자', '민간 경제외교관'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35년간 효성그룹을 이끌며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등을 독자기술로 개발해 세계 1위 제품으로 육성했으며, IMF 외환위기를 공적자금 없이 극복한 대표적 성공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태평양경제협의회,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등을 이끌며 한국 경제의 글로벌 도약에 기여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조 명예회장을 "대한민국 기술 경영자로서 선각자"라고 평가했으며, 재계 관계자들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해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과 위상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회고했습니다. 학계에서도 그의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은 이론 체계와 적절히 부합하는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임종을 앞두고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업을 번창시켜 달라"는 산업보국의 메시지를 가족에게 남겼으며, 이는 그가 평생 실천해온 기업가 정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의 기술 중심 경영철학과 글로벌 비전, 그리고 민간 경제외교에서의 활약은 한국 경제사에 길이 남을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