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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염전 미국 수입 금지 사태 : 태평염전 강제노동 지적과 국제적 파장

by jisik1spoon 2025. 5. 24.

미국이 한국 최대 규모의 단일 염전인 전라남도 신안군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에 대해 강제노동을 이유로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2025년 4월 2일(현지시각)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발령한 인도보류명령(WRO)은 한국 기업 제품이 강제노동 상품으로 규정되어 외국에서 통관 억류된 최초 사례로, 국내 천일염 산업과 한국의 국제적 신뢰도에 중대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2014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염전 장애인 노동자 착취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국제사회의 강화된 공급망 인권 규제 흐름 속에서 한국이 직면한 첫 번째 시험대가 되고 있다.

미국의 인도보류명령(WRO) 발령과 그 근거

인도보류명령의 구체적 내용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2025년 4월 2일 태평염전에 대한 인도보류명령을 발동하며 "강제노동 사용을 합리적으로 보여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태평염전에 대해 인도보류명령을 발령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조치에 따라 미국 내 모든 입국 항구의 CBP 직원들은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 제품을 즉시 압류하도록 지시받았다. 태평염전은 연간 약 7-8톤(1억 원 상당)의 천일염을 S식품을 통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인도보류명령은 생산 기업이 강제노동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입증해야만 해제될 수 있는 강력한 조치이다. CBP 청장 대행 피트 플로레스는 "강제노동과의 싸움은 CBP의 최우선 과제"라며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미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수전 토머스 CBP 무역국장 대행도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을 근절하는 것은 법을 준수하는 미국 기업들이 공평한 경쟁의 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강제노동 지표 적용

CBP가 태평염전에 대해 인도보류명령을 내린 근거는 국제노동기구(ILO)가 규정한 강제노동 지표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CBP는 조사 과정에서 "취약성 악용, 속임수, 이동 제한, 신분증 압수, 열악한 생활 및 근무 조건, 협박 및 위협, 물리적 폭력, 채무 속박, 임금 유보, 과도한 초과 근무" 등의 강제노동 지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표들은 ILO가 전 세계적으로 강제노동을 식별하기 위해 제시한 11가지 핵심 기준에 해당한다.

 

강제노동은 ILO 강제노동협약(1930년 제29호)에 따라 "처벌의 위협하에 개인으로부터 강제로 얻어지는 모든 노동이나 용역으로서 해당 개인이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정의된다. 전 세계적으로 약 2,760만 명이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중 85%가 개인과 기업 같은 사적 주체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태평염전 강제노동 문제의 역사적 배경

2014년 염전 노동자 착취 사태

신안 염전의 강제노동 문제는 2014년 처음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당시 지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염전 근로자 착취 사건이 발생하여 전국적인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은 취약계층에 대한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드러내며 염전 산업 전반에 대한 점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4년 사태 이후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상 '강제근로 금지' 위반으로 처벌받은 가해자는 단 한 명뿐이고 형량도 징역 1년 2개월에 그쳤다. 처벌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제근로가 아닌 사기나 횡령, 폭행 혐의 등이 적용되어 강제노동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과 예방 효과가 미미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2021년 태평염전 강제노동 사건

2021년 5월 태평염전에서 또 다른 강제노동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염전에서 탈출한 장애인 노동자의 폭로로 드러난 이 사건은 사실상 감금 상태에서 이루어진 강제노동으로, 수사기관이 집계한 미지급 임금만 1억 1,500여만 원에 달했다. 이는 2014년에 이어 '2차 염전노동자 착취 사태'로 불리며 국내 염전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

 

문제가 된 사안은 태평염전 일부를 임대한 임차인(개별사업자)과 해당 임차인이 고용한 근로자 사이에서 발생한 임금 체불 등의 사건이었으며,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 염전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태평염전 전체의 운영 시스템과 관리 감독 체계의 허점을 드러내며 국제적인 비판의 빌미가 되었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 현황

전라남도의 종합적 대응 방안

전라남도는 미국의 인도보류명령 발령에 대해 해양수산부, 신안군, 기업 등과 함께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도는 2021년 사건 발생 이후 염전 근로자의 올바른 노동환경 정착과 염전 환경 개선을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해왔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근로자를 고용한 염전에 대해 1대1 전담공무원을 배치하여 근로 여건 및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전라남도는 2022년부터 매년 염전 종사자에 대한 근로환경 및 인권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예산을 8천만 원으로 대폭 확대하여 실태조사뿐만 아니라 교육과 심층상담 등 조사 영역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염전 운영자와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 교육을 2017년부터 현재까지 64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2025년에는 93명을 추가로 교육할 예정이다.

제도적 개선 노력과 한계

전라남도는 2022년 6월 전라남도 인권기본조례를 개정하여 도민인권 침해구제위원의 인권침해 구제 대상 범위에 '도내 염전 법인단체 또는 사업장'을 포함시켰다. 이는 염전 근로자를 비롯한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모든 근로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의 일환이다. 신안군도 2021년 12월 '신안군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강제노동이나 인권침해를 제도적으로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4년 염전근로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년 대비 폭력·착취 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인권의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전라남도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인도보류명령을 발령한 것은 과거 사건의 심각성과 구조적 문제 해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양수산부의 정부 차원 대응

해양수산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하여 미국의 태평염전 제품에 대한 인도보류명령 해제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검토·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1년 강제노동 사건 이후 염전 인력현황 실태조사를 매년 실시하고, 노동력 경감을 위한 자동화 장비 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개선조치를 이미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는 현재 미국에 수출되는 태평염전 생산 천일염 제품들은 모두 강제노동과 무관한 상황이라고 주장하면서, 태평염전 등 업체를 통해 염전 노동자 인권 제고를 위한 교육 강화 등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국제적 맥락과 글로벌 공급망 규제 강화

OECD 국가 중 두 번째 사례의 의미

이번 태평염전에 대한 미국의 인도보류명령은 1994년 일본 기업(비디오게임 등)이 조치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한국이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이는 한국이 선진국 그룹에 속하면서도 인권과 노동 분야에서 국제적 기준에 미달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한국은 이제 중국, 소말리아, 짐바브웨 등 12개국과 함께 WRO 대상국 리스트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국가적 신뢰도와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K-브랜드의 글로벌 확산과 한국의 소프트파워 증진 노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다른 산업 분야에도 파급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공급망 실사 규제의 확산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실사 규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 의회는 2024년 11월 강제노동 제품의 유통을 전면 금지하는 규정을 통과시켜 2027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며,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도 2027년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이러한 국제적 규제 강화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전반에 대한 인권 실사와 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도 2022년 6월부터 발효되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되거나 특정 단체가 생산한 모든 제품을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으로 추정하고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선례들은 인권과 노동 문제가 더 이상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무역과 직결된 글로벌 이슈임을 보여준다.

염전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개선 과제

태평염전의 운영 구조와 책임 소재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단일 염전으로 1953년 조성되어 2007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시설이다. 연간 국내 천일염의 약 6%(1만 6천톤)를 생산하여 자체 브랜드 상품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식품 기업에도 납품하고 있다. 2018년 해양수산부는 손일선 회장에게 "천일염의 식품화 및 선진화에 앞장선 공로"로 제12회 장보고대상 대통령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염전의 운영 구조는 부지 대부분을 천일염 생산업자들에게 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직접적인 관리와 감독에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이 일부 위탁 업체에서 발생한 강제노동 문제가 전체 염전의 이미지와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신안군과 태평염전 측은 문제가 된 임차인과는 이미 계약을 해지한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 측은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장애인 노동자 보호와 사회복귀 시스템의 부재

염전에서 구조된 장애인 노동자들에 대한 재활과 사회복귀 시스템의 부재는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구조된 경우에도 적절한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없어 다시 염전으로 되돌아가거나 가난하고 고립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는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종합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공익법센터 어필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2022년 11월 미국 CBP에 인도보류명령을 청원하면서 "과거 장애인 착취로 처벌받은 사업장에서 다시 피해자가 발생했거나 계속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기업들이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을 근절하기까지 미국 내 유통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외부의 충격이 필요했다고 평가하며, 이번 미국의 조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론 및 향후 전망

신안 태평염전에 대한 미국의 수입 금지 조치는 한국이 직면한 인권과 노동 분야의 구조적 문제를 국제사회에 드러낸 중대한 사건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하나의 염전 문제를 넘어서 한국의 노동 인권 수준과 국제적 신뢰도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강제노동을 이유로 한 수입 금지 조치를 받았다는 것은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인권 기준에서 미달했음을 의미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조치가 이루어진 것은 과거의 개선 노력이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충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인도보류명령을 해제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해명을 넘어서 실질적이고 검증 가능한 개선 조치들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는 염전 산업뿐만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고용된 수산업계 전반에 대한 노동 실태 조사와 인권 보호 시스템 구축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실사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 속에서 이번 사건은 한국 기업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단순히 법적 처벌을 피하는 수준을 넘어서 적극적인 인권 경영과 공급망 관리를 통해 국제적 신뢰를 회복해야 할 때이다. 태평염전 사태를 계기로 한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권을 존중하는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