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부작(述而不作)은 '기술하되 지어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성인(聖人)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자신의 학설을 새롭게 창작하지 않음을 가리키는 사자성어입니다. 이 성어는 동양 학문의 근본 정신을 담고 있으며, 학자의 겸손한 자세와 객관적 태도를 강조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술이부작의 한자 구성과 의미
술이부작의 한자는 述而不作로 표기됩니다. 述(술)은 '지을 술' 또는 '서술할 술'로, 이미 존재하는 것을 따라 기록하고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而(이)는 '말 이을 이'로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사 역할을 합니다. 不(부)는 '아닐 부'로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作(작)은 '지을 작'으로 새롭게 창작하고 만들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술이부작은 문자 그대로 "서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述(술)이라는 한자의 원래 의미를 살펴보면, 길에서 영력을 지닌 짐승으로 진퇴를 점쳐 점에 따르는 일을 가리켰으므로 '따른다'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술(述)이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선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태도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작(作)은 하늘에서 떨어지듯 새로 창안하는 것, 즉 창작(創作)을 의미합니다.
술이부작의 출처와 유래
술이부작은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자신의 저술 활동과 학문 태도에 대해 설명한 것입니다. '술이'라는 편명 자체가 바로 이 술이부작에서 유래했습니다. 논어 술이편은 모두 3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 내용과 공자의 모습, 태도, 행동에 관한 기록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원문은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으로, "공자가 말했다. 있는 그대로를 진술할 뿐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니 은근히 내 자신을 우리 동네 팽씨 어르신에 견주어 본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노팽(老彭)은 은나라 시대 옛것을 좋아하고 기술하는 것을 좋아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통해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도(道)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힘써 구한 자임을 밝혔습니다.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라는 논어 술이편의 구절에서 공자는 자신도 선천적으로 도를 안 것이 아니라 옛것을 배우고 익혀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술이부작과 신이호고의 관계
술이부작은 신이호고(信而好古)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이호고는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는 뜻으로, 술이부작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술이(述而)는 호고(好古)와 상응하므로 순서를 바꾸어 해석하면 '고증된 옛것을 믿고 그대로 서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자(朱子)는 주석에서 "술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것이고 작은 지어내는 것(述 傳舊而已 作 則創始也)"으로 해석했습니다. 공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시경(詩經), 악경(樂經), 예경(禮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춘추(春秋) 등 육경(六經)을 찬술하면서 전해오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것이고, 여기에 자신의 사상이나 생각을 창작하여 보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술이부작은 논어 팔일(八佾)편에 나오는 무징불신(無徵不信), 즉 '실증할 수 없으면 믿지 않는다'와 상통합니다. 이것은 '고증할 수 있는 것만 믿는다'는 의미로, 공자가 추구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철저하게 고증하고 정확한 사실을 믿는 태도를 바탕으로 함을 보여줍니다.
술이부작의 학문적 의미
술이부작은 허황된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정확하지 않은 것을 임의로 써서는 안 된다는 작문과 찬술의 엄격한 원칙입니다. 공자가 창작을 배격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유가(儒家)들은 허구나 황당한 이야기를 배격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정확하게 기록한다고 했기 때문에 시(詩)와 문(文)을 중요시한 반면 소설과 야담을 배격했던 것입니다.
공자와 유가들은 소설을 소도(小道)로 하찮게 여겨서 대도(大道), 즉 도리(道理)와 거리가 먼 황당한 이야기로 간주했습니다. 만약 새로운 것을 창작한다면 술이작(述而作)이나 작이술(作而述)이 되는데, 이것은 진술이나 기술보다 창작하여 지어내는 것에 의미를 둔 개념입니다.
공자는 논어 술이편에서 "아마도 알지 못하면서도 창작하는 자가 있겠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확실한 근거 없이 함부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논어 위정(爲政)편에서도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아는 이로써 스승으로 한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고 하여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스승의 자격으로 보았습니다.
술이부작과 역사 서술
술이부작은 공자의 단순한 저술 활동에 대한 설명에서 동양 역사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으로 번져나간 중요한 개념입니다. 있는 사실을 기술하기만 하고 자신이 말을 지어내지는 않는다는 원칙으로, 역사를 교훈의 수단으로 삼는 초기적 사관에서 벗어나 역사학을 과학으로 독립시킨 공자의 걸출한 사상입니다.
사실과 의견의 철저한 구분이라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 서술 원칙은 진작부터 술이부작이라는 단어로 공자의 제자들에게 전해오던 것입니다. 이 술이부작의 원칙은 공자가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春秋)를 지으면서 대의명분론과 결합해 춘추사관(春秋史觀)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비롯해 동양의 역사서 기술은 술이부작의 정신에서 시작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서술할 뿐 그에 대해 가타부타 평가를 달지 않는 것이 술이부작의 기술법입니다. 드라이한 사실 진술이지만 행간을 읽으면 거기에 비판의 메시지가 숨어 있음을 미뤄 짐작하게 하는 기술법입니다.
술이부작의 기술법에는 당대에 벌어진 사건을 기술한 뒤 과거 역사적 사실과 대비하는 방식도 포함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취사선택하느냐에 있습니다. 공자는 비판의식이 펄펄 뛰는 과거의 사실을 걷어 올려 진부한 현실을 공격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했습니다.
술이부작과 겸손의 미덕
술이부작은 저술한 것이지 창작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자신의 저술이나 창작을 두고 저자가 겸손의 뜻으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자신의 저작을 소개할 때 술이부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이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옛 선현들의 학문을 정리하고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조선 후기 사상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청대 고증학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표절이란 관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만한 생각이 없었다"며 "공자가 말하는 술이부작에 충실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어쩌면 지금 말하는 표절이 당연한 행위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술이부작이 단순한 겸손의 표현을 넘어 당시 학문 세계의 패러다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조선시대 병신처분과 술이부작
조선 후기에는 술이부작 때문에 정쟁까지 난 적이 있었습니다. 1716년(숙종 42) 노론의 송시열(宋時烈)과 소론의 윤증(尹拯) 사이에서 발생한 회니시비(懷尼是非)에 대해 국왕이 판정을 내린 병신처분(丙申處分)이 바로 그것입니다.
송시열이 윤선거(尹宣擧)의 묘비문을 쓰면서 박세채(朴世采)가 작성한 윤선거의 행장을 인용하면서 술이부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박세채가 윤선거를 찬양함이 참 아름답다. 하지만 난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그래도 망자의 묘비문이고, 박세채의 글도 참 좋아서 인용하기는 하겠는데(述而) 내가 쓴 글이 아니다(不作). 하여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둔다"라는 뜻이 됩니다.
송시열은 술이부작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묘비문에 표현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최종적으로 숙종은 윤증의 잘못으로 판정하여 소론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정국에서 위축되었으며 노론은 정국 주도권을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술이부작의 현대적 의미
술이부작이 강조하는 것은 과거에 함몰되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대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섣부른 예측이나 어설픈 독창성을 내세운 독단적인 학문 태도나 아집은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공자의 관점은 현재 역시 과거의 연장선이며 미래 사회 역시 현재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스승 역시 미래에 펼쳐질 일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것에 대처할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습니다. 따라서 술이부작은 옛것을 배우고 익혀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현재와 미래에 적용하는 온고지신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합니다.
서술하는 것이 창작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로 공자가 스승의 역할을 강조한 술이부작은,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지혜를 충실히 배우고 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옛것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연속성에서 진정한 창작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 술이부작의 핵심 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