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歸去來辭)는 중국 동진 시대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산문시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시의 제목을 넘어서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 불멸의 명작입니다.
어원 분석과 한자적 의미
귀거래사의 한자 구성을 살펴보면 歸(돌아갈 귀), 去(갈 거), 來(올 래), 辭(말씀 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歸(귀)'자로,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의 중국문학 연구자 吉川幸次郞의 분석에 따르면, '歸去來兮' 네 글자에서 의미의 중심은 오직 '歸'자에만 있으며, 나머지 '去來兮'는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감정에 의해 고조되는 심리적 파동을 표현하는 보조어에 불과합니다.
'歸去來兮'의 전통적인 한국식 독음은 '귀거래혜'이지만, 일본에서는 고대부터 '카에린난이자(かへりなんいざ)'로 읽어왔습니다. 이러한 읽기 방식은 菅原道真에 의해 확립된 것으로, 현대 중국어로는 '回去了罷(ホイチュラバ)'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도연명과 역사적 배경
도연명(365-427?)은 위진남북조시대 동진 말기에서 남조 송 초기에 활동한 시인으로,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좨주(祭酒)로 벼슬을 시작하여 참군(參軍)을 거쳐 팽택현령에 임명되었으나, 405년 41세의 나이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도연명이 관직을 포기한 직접적인 계기는 상관의 순시 때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두미(五斗米, 즉 쌀 다섯 말)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직한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당시 관료사회의 부패와 아첨이 만연했던 현실에 대한 그의 강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문학적 구조와 내용 분석
귀거래사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다른 각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됩니다. 이는 "자, 돌아가자.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장에서는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가족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僮僕歡迎 稚子候門(동복환영 치자후문)"에서는 머슴아이가 길에 나와 반기고 어린 자식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그려내며, "有酒盈樽(유주영준)"에서는 술항아리에 가득한 술이 그를 반기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세 번째 장은 세속과의 절연선언을 포함하여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고 있으며,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열친척지정화 낙금서이소우)"에서는 친척들과의 정담과 거문고, 독서를 통한 마음의 평안을 노래합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자연관과 철학적 의미
귀거래사에 나타난 도연명의 자연관은 단순한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넘어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운무심이출수 조권비이지환)"에서는 구름이 무심히 산골짜기를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가 둥지로 돌아오는 자연의 이치를 통해, 인간 또한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은 당시 관료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합니다. 이는 도교적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인위적인 사회 질서보다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려는 철학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현대적 의미와 활용
현대에 와서 귀거래사는 다양한 맥락에서 인용되고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공직이나 선출직에서 물러날 때 자주 인용되며, "권세 있는 자리일수록 귀거래가 회자되기 십상"입니다. 2014년 제주지방선거 당시 우근민 도지사, 박희수 도의회 의장, 양성언 교육감 등이 모두 임기를 마치며 '귀거래'하는 상황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귀거래의 대표적인 현대적 사례로는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80% 이상의 국민 지지와 주변의 강력한 연임 권유를 뿌리치고 단임으로 물러나면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나를 키워준 계곡과 언덕, 시냇가를 거닐고 싶다"는 퇴임사를 남겼습니다.
또한 현대 한국 대중문화에서도 귀거래사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김신우의 동명 가요에서는 "하늘아래 땅이 있고 그위에 내가 있으니 어디인들 이내몸 둘 곳이야 없으리"라고 노래하며, 도연명의 자연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문학사적 영향과 가치
귀거래사는 중국 문학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연명의 "기교를 부리지 않는 평범한 시풍"은 당시에는 멸시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지만, 후에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시풍은 당나라의 맹호연, 왕유, 유종원, 백거이 등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중국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한국 문학에서도 귀거래사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이인로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본받아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를 지었으며, 여기서 그는 "공명은 천명을 기다릴 일이요, 늙마엔 돌아가 쉬어야 하리"라고 하여 공명에 대한 소망과 현실적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론
귀거래사는 단순한 시의 제목을 넘어서 하나의 철학적 명제이자 인생관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도연명이 1600여 년 전에 제시한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자세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물질만능주의와 경쟁사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귀거래사가 제시하는 가치관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시 제목이 동시에 고사성어로 사용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인 귀거래사는 문학 작품이 지닐 수 있는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도연명의 "오두미를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는 기개와 자연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했던 의지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불멸의 명작으로 기억될 것입니다.